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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영혼을 위로하는 소울 대부 김도향

올해로 음악 인생 47년.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CM송 작곡가로, 그것도 모자라 명상가로, 태교음악으로, 기 수련가로 국민에게 준 ‘즐거움’으로 따지자면 그 어떤 ‘예인’ 못지않은 가수 김도향. 그가 <허참의 토크&조이>를 찾아 음악으로 충만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털웃음도, 덥수룩한 수염에 마도로스 모자도 그대로였다.





바보는 내 삶의 키워드

1980년 어느 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삶의 허무와 쓸쓸함을 느꼈던 데뷔 10년차 가수 김도향. CM송 제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진정한 음악에 대한 갈망을 느끼던 즈음에 불꽃처럼 떠올랐던 악상이 바로 ‘바보처럼 살았군요’였다.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됐지요. ‘바보처럼 살자’. 그런데 ‘바보’란 뜻이 뭔지 아세요? ‘바로 보다’란 뜻이에요. 세상을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가 힘들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지금도 음악 후배들에게 ‘바보가 되라’고 가르쳐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년, 가수가 되다

1945년 서울 당산동에서 태어난 김도향의 어릴 적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중학생 시절 매일 동시 상영을 여러 편 했던 극장 우미관 바로 옆이 그의 집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날마다 극장에 앉아 수많은 영화들을 섭렵했던 그는 자연스레 영화감독의 꿈을 품게 됐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라벌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을 만큼 영화에 대한 열의가 컸던 김도향. 졸업 후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들어가 꿈을 좇았지만 현실은 밥 먹고 살기도 힘들 만큼 궁색했다. 결국 생계를 위해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하게 됐고 당대최고의 가수 이미자의 눈에 띄어 KBS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1970년 친구 손창철과 함께 ‘투코리안스(TWO KOREANS)’ 라는 남성 듀오로 데뷔해 ‘벽오동 심은 뜻은’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며 단숨에 스타가 됐다.


CM송 대가

올해 초 김도향은 롯데제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롯데제과 50년 역사에서 그가 제작한 CM송인 ‘스크류바’가 최고의 CM송으로 선정된 것이다. “제품을 보면 바로 멜로디며 가사가 생각나요. 스크류바의 경우도 ‘뭐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어~’라고 말을 내뱉고 보니 바로 멜로디가 떠오르더라구요.” ‘줄줄이 사탕’을 첫 작품으로 이후 발표하는 CM송마다 히트를 친 김도향. 삼립호빵을 비롯해, 아카시아껌, 화장지 뽀삐, 가나 초콜릿 등 주옥같은 광고 음악들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가 제작한 CM송은 무려 3,500여 곡에 달하며 광고 관련 상도 여러 번 수상했다. 1980년에는 ‘광고계의 아카데미상’에 비견되는 ‘클리오 국제광고제’ 라디오 광고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았으며, 각종 국내외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등 명실상부 광고 음악가로서 전성기를 달렸다.


음악의 힘을 믿는 김도향

한동안 명상에 빠져 매스컴에서 좀체 보기 힘들었던 김도향. 그가 다시 노래를 천직으로 알고 돌아온 데에는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2001년 무렵, 지인이 제주도 노인요양원 위문공연을 하는데 한 가수가 펑크를 냈다며 대신 무대에 서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20년 만에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한 할머니가 갑자기 ‘김도향이다’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 당황했던 김도향. 알고 보니 그 노인은 10년간 치매로 인해 말 한마디 못하다가 자신이 노래하는 순간에 말문이 터진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치료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저로서는 노래가 가지는 놀라운 힘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노래라는 게 단순히 딴따라만은 아닌 무엇이 있구나’라는 걸 깨닫고 그길로 다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김도향에게 음악은 이제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치유의 행위이다. 오늘도 상처 입은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길 위에 서는 김도향. 그에게 내일의 꿈을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저는 남은 인생을 설계하지 않아요. 늘 현재만 있죠. 바보는 내일을 설계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김정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