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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워커 vs 워커

워커 vs 워커

7월 12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주한미군 평택시대’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용산시대’를 마감하고 ‘평택시대’를 여는 주한미군의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에는 워커 장군의 동상도 옮겨졌습니다. 워커장군(Walton Walker, 1889~1950)의 동상은 그동안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8군이 평택으로 옮겨가면서 그의 동상도 새 집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신문들은 64년 만의 미군기지 이전을 주요 뉴스로 뽑고 있지만 저에게는 사진 속 워커 장군의 동상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반인들은 ‘워커’라는 이름을 ‘워커힐 호텔’과 ‘워커힐 아파트’, ‘캠프 워커’로 많이 기억을 하겠지요.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동안 들어온 워커힐이라는 이름이 ‘워커 장군’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정부 시절에는 워커힐에 정부 고관들의 안가가 있느니, 중정이 주요 외국 인사들을 초청해 파티를 벌이는 장소가 있느니 하는 말이 돌면서, 워커힐 호텔은 사뭇 접근 못할 비밀의 장소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니 ‘워커힐’이 ‘워커 장군을 추모하는 언덕’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요. 


일반적으로 한국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이지만, 워커 장군은 맥아더 못지않게 한국의 최근 역사와 관련이 많은 인물입니다. 도쿄에서 전쟁을 지휘하던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6월 30일 워커 장군에게 한국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는 7월 13일 한국으로 왔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워커에게 북한군에 1인치도 밀리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했는데, 이미 개전 초기 북한군으로부터 큰 타격을 입은 한국군과 미군에게 전세는 점점 불리해지기만 했습니다. 다행히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 정보국은 북한군의 무선 연락 장치를 뚫는데 성공하면서 북한군의 이동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고, 워커 장군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반격에 성공하게 됩니다. 전쟁의 양상이 한미연합군에 유리하게 된 것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이 성공한 9월, 미 8군은 북쪽으로 진격을 거듭해 10월 말경에는 압록강까지 이르게 됩니다.



"워커힐에는 6.25전쟁과 당시 한국에서

싸웠던 미군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6.25가 남북분단으로 끝난 것은 모두 아는 이야기이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워커 장군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던 12월 23일, 그는 역시 한국전에 참전 중이던 아들 샘의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양주군(현재의 도봉구 자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들인 샘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뒤 상부로부터 한국을 떠날 것을 명령받았지만 전쟁 중에 귀국할 수는 없다며 1951년까지 한국에서 싸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부자가 함께 같은 전쟁에 참전한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월턴 워커와 샘 워커는 미국 역사상 부자가 모두 4성 장군으로 진급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월턴 워커는 중장으로 전사해서 사후에 4성 장군으로 추서). 요즘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청문회를 보면 병역의무와 관련한 논란이 자주 일어나는데, 놀랍지 않습니까. ‘남의 나라’ 전쟁에 부자가 모두 참전해서 아버지는 목숨까지 바쳤다는 사실 말입니다. 


워커 장군이 한국전쟁동안 남긴 연설은 군인 정신을 보여주는 명연설로 유명합니다.“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부하들에게) 여기서 더 후퇴하면 내가 장례식을 치러주겠다.”는 등의 말은 한국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워커 장군이 사망한 인근의 언덕에 워커를 기념하여 워커힐, 즉 ‘워커 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면서 그에 대한 한국의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이제는 워커힐 호텔로 더 많이 알려진 워커힐에는 6.25전쟁과 당시 한국에서 싸웠던 미군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옮겨 가면서 용산 미군기지 자리도 크게 모습이 달라지겠지요. 그렇게 역사는 흐르고 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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