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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86살의 학생

86살의 학생

지인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86살의 형님이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몇 차례 수술 끝에 코마(무의식 상태)에 빠졌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의 불행이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형님의 인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특이했기에 무의식 상태에 빠진 것이 유난히 아쉽다고 했습니다. 올해 86살의 그가 쓰러지기 직전 동생에게 선물한 것은 불어사전과 불어 교습 세트였습니다. 형님은 동생의 불어 발음에 불만을 표한 적이 몇 차례 있는데, 제대로 배우라며 아예 불어 교습 세트를 선물했다는 것입니다. 형님과의 나이 차이는 18살, 86살의 형님이 칠순을 눈앞에 둔 동생에게 한선물치고는 인상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86살의 형님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프랑스 파리에서 배달되어 온 ‘르몽드’ 신문을 열독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최근에 그는, 불어는 마스터를 했으니 독일어를 새로 시작하려 했다고 합니다. ‘르몽드’를 주문해서 읽었던 사람이니 아마도 ‘슈피겔’ 신문을 주문했을 것이란 게 지인의 말이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기본’인 시대가 되었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나 혼자’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정도로 한두 개 외국어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구순을 눈앞에 둔 ‘노인’이 영어도아닌 불어를 10년 동안 공부해서 마스터했고 또 다른 외국어를 시작하려 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지하철에서 쓰러져서 코마에 들지 않았다면 구순에 이르러서는 영어, 불어, 독일어를 구사하는 기록을 세웠을지도 모르지요. 나이 40~50대에 외국어 배우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분에게 ‘젊은 사람이 용기도 없구먼’이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연전에 히트를 친 노래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였습니다.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 인구들의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그들의 ‘나이’에 대한 인식과 맞아 떨어진 이 노래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요즘은 환갑 잔치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지요. 직장에서는 은퇴했지만 왕성하게 노후 생활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주로 ‘인생 2막’의 테마로 거론되는 것은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식당을 여는 것이나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 일입니다. 이처럼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지식 계발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합니다. 공부는 젊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인생 2막에는 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선택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형님’처럼 외국어를 선택해서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제보다 더 고양되기를

바라는 ‘향상심’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이유로 공부를 하는 것이겠지요"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중년이 지나 은퇴를 해도 공부와 일을 멈추지 않는 다면 80대를 지나서도 알찬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1920년 출생인 김 교수는 그의 모범적인 삶을 테마로 전국을 다니며 왕성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두 가지 제안, 즉 공부와 일 가운데서 사람들이 놓치는 것은 ‘공부’ 부분입니다.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서 일을 하는 이들은 많지만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이 라고 생각하거나 ‘공부는 젊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가장 늦은 나이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읽은 가장 인상적인 책 중의 하나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인데, 주인공 모리 교수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깊은 철학적 명상으로 우리에 게 감동을 줍니다.


논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부라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무지했던 그 전의 자신과는 달라진 자신으로 향상되었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제보다 더 고양되기를 바라는 ‘향상심’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이유로 공부를 하는 것이겠지요. 그 ‘형님’도 이런 기쁨을 알았기에 86살에 독일어를 새로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연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나이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86살의 나이에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려한 그 ‘형님’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몰랐던 ‘신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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