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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스톡데일 패러독스서

스톡데일 패러독스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집안에 태어나 부를 대물림 받고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고난 미모를 뽐내며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실시간으로 동정이 인터넷에 올라가는 연예인도 있습니다.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인 것처럼 별 노력을 하지 않고도 최상의 학교를 가고 최상급 성적을 내는 수재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닐지는 몰라도 웬만한 사람이 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든 시련을 겪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오해를 받거나 다른 이들의 음모에 의해서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의 경험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꼭 최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도 갑작스럽게 ‘추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따르면, 우리가 시련을 이기도록 만드는 것은 낙관이지만 지나친 낙관은 위험하다고 합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1965년부터 8년 동안 베트남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스톡데일 장교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1965년 9월 9일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 1923~2005)은 북베트남 상공에서 작전을 펼치던 중 그가 몰던 전투기가 공격을 받았고, 낙하산 탈출을 한 그는 포로로 잡힙니다. 이후 그는 베트남의 ‘알카트라즈’라고 불리던 ‘호아 로’ 감옥에 갇힙니다. ‘하노이 힐튼’이라 불리던 이 감옥에는 ‘알카트라즈 갱’이라 불리는 11명의 미군 포로들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알카트라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난폭한 대우와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스톡데일은 이곳에서 8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는데,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던 미군 장교들에게 ‘하노이 힐튼’은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러나 시련을 견뎌내는 그만의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11명의 포로 가운데 가장 계급이 높았던 그는 감옥 내에서의 행동수칙을 만들고 고문을 견뎌내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 그는 수시로 샤워실 칸막이에서 족쇄를 단 채 고문을 받고 얻어맞았는데, 포로들에게 가두행진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면도칼을 이용해 자신의 두부에 상처를 입혔다고 합니다. 베트콩들은 미군 포로들에게 가두행진을 시킴으로써 자국군의 사기를 높일 계획이었는데, 적의 선전도구로 이용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베트콩들은 그의 머리 상처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씌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스톡데일은 의자로 자신의 얼굴을 때려서 심하게 부어오르게 했습니다. 가두행렬을 강제로 시키면 전 세계가 얼굴 형체가 휘어진 것을 베트콩의 고문으로 알 터이니 베트콩으로서도 난감했겠지요.


"낙관주의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스톡데일은 8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옥 같은 감옥에서 보내고 1973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유명 경영컨설턴트인 제임스 콜린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옥을 견뎌낸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나가게 될 것은 물론 결국 승리할 것이며, 이 경험을 내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결정적인 순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지옥’에 패러독스서 살아남지 못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에 대한 답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낙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라고 했죠. 크리스마스가 오고, 또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 때까지는 석방될 거야’라고 했어요. 부활절이 오고, 또 지나갔죠. 그리고는 추수감사절, 또 크리스마스가 지났습니다. 결국 그들은 상심을 해서 죽었습니다.”


스톡데일의 말은 낙관주의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패러독스’라는 것입니다. 낙관은 우리들을 고난에서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면서 고난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톡데일은 고문을 당하고 또 선전도구로 이용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몸에 상처까지 내는 극단적인 경험을 했지만, 지나친 낙관을 경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장기전’으로 수감생활에 임했으니 단기간에 석방이 되지 않아도 절망을 하지 않았겠지요. 건강관리도 훨씬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석방된 스톡데일은 고문후유증으로 현역으로 복귀하지는 못했지만 해군중장까지 진급했고, 해군학교장을 마지막으로 1979년에 퇴역했습니다. 오늘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톡데일의 경험은 인생은 ‘장기전’이며, 낙관마저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때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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