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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케네디의 기밀

케네디의 기밀

지난 1963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젊고 유능한 대통령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내 재클린 부비에, 이 ‘퍼스트 커플(First Couple)’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언론의 주목을 끌 정도였습니다. 케네디 외에도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사람은 많지만 케네디 대통령 하면 떠올리는 사건은 ‘쿠바 미사일 위기’입니다. 카스트로 혁명이 성공한 쿠바가 1962년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이 기지를 향해 소련의 핵무기가 탑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이 접근하면서 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고조됩니다. 케네디와 흐루쇼프 간의 대결은, 그러나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케네디의 지지율은 급등합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국제정치와 외교, 특히 위기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꼽힙니다. ‘치킨게임’은 결국 한쪽의 파국을 몰고 오는데, 이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패를 내놓아야 하는가를 쿠바 미사일 위기가 보여주면서 ‘위기관리의 교과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은 미국의 승리로 종료되었고 미소 양국은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핫라인’을 설치합니다. 이 같은 위기와 해결이 10여 년 뒤 미소 데탕트로 발현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 치고 한국에 영향을 주지 않은 인물이 없겠지만, 케네디는 특히 한국의 기술과 문화 분야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의 평화와 우호를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만들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봉사단원들이 주로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기술지원과 교육 분야에서 지원 활동을 펼쳤습니다. 2015년까지 22만 명의 봉사단원들이 141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첫 평화봉사단원이 파견된 것은 1966년, 우리나라가 개도국으로 들어서던 1981년까지 봉사단원들은 주로 농어촌의 중고등학교에 배치돼 영어, 과학, 체육 등을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경우 ‘기밀 봉인과 해제’의 기준은

단기간에 공개할 경우 초래할 수 있는

국정혼란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케네디를 사망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의 관심사’로 만들고 있는 것은 그의 암살을 둘러싼 미스터리입니다. 오스왈드라는 저격범은 즉시 붙잡혔지만 그가 이틀 뒤 다시 암살되었기 때문에 케네디의 암살 동기와 배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쾌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문건 2,800건이 추가로 공개되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그의 암살 동기나 배후와 관련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범인이 너무 빨리 사망했기 때문에 “오스왈드 케이스는 그가 사망한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후버 당시 FBI 국장의 메모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55년만의 정보 공개에 미국 언론도 떠들썩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주요 문건들에 대해 기밀 연한을 책정하여 짧게는 10년, 길게는 75년 이상을 봉인하도록 하고 기간이 지나면 공개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 정권의 주요 기밀 문건들이 짧은 기간 안에 공개되면 국정 혼란을 가져올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합니다. 50년도 더 지난 사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국가 안보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2,800건의 문서만 공개한다고 밝혔다가 언론의 저항에 직면한 뒤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CIA 등 관련 부처, 또 존 켈리 비서실장과 상의하여 ‘생존해 있는 인물들의 이름과 주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문서를 공개하도록 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입니다. 완전하고 투명한 공개, 그리고 어떠한 음모론도 잠재우기 위해서 공개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는데, ‘생존해 있는 인물들의 이름과 주소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미국의 경우 ‘기밀 봉인과 해제’의 기준은 단기간에 공개할 경우 초래할 수 있는 국정혼란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든 75년이 지나든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확한 기록이 공개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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