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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의건강지킴이닥터人

녹농균 패혈증


최근에 유명 한식당의 대표가 패혈증으로 사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망 이후 혈액 배양검사에서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이 검출되면서 녹농균 패혈증으로 사인이 밝혀졌습니다. 녹농균의 침투 경로가 병원 내 원내감염인지, 아니면 선행된 개에게 물린 상처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의사를 비롯한 감염 전문가들도 선뜻 침투 경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일상 생활공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녹농균

대부분의 세균은 자신이 좋아하는 환경이 있습니다. 공기를 좋아하는 성질의 경우 ‘호기성’으로 분류하고, 공기를 싫어하는 경우 ‘혐기성’으로 분류합니다. 녹농균은 분류상 호기성 균이지만, 특이하게도 산소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쉽게 배양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녹농균은 어떤 물질에서도 탄소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유기물만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증식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사람, 동물, 식물, 토양 속에서도 쉽게 검출되며 심지어 물속, 생활공간 속에서 찾는다면 수영장에서도 녹농균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건학적인 편의에 맞게 세균을 분류하기도 하는데, 일상적으로 사람에게 흔히 관찰되는 균을 ‘상재균’이라 하고, 비교적 흔하지는 않지만 중요 질병이 생겼을 때 다수로 관찰되는 균을 ‘병원성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녹농균은 상재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재균이 어떻게 패혈증 같은 감염증을 일으켰을까요?


기본적으로 감염성 질환이라 함은 숙주(host)의 면역과 병원체(pathogen) 간 대결의 결과입니다. 숙주가 건강하고 면역력이 좋으면 웬만한 병원체는 감염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숙주의 면역력이 매우 약해지면 사소한 병원체에도 감염이 됩니다. 후자의 경우에 발생하는 감염을 ‘기회감염(Opportunistic Infection)’이라고 하는데, 녹농균 감염증은 전형적인 기회감염증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감염증은 소아, 노인,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화상환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등에게서 일어납니다.


녹농균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병원 내에서 감염이 이루어지는 원내감염의 대표적인 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입원 전에는 5%에 불과한 검체 양성율이 입원 기간이 한 달이 지나면 30% 정도로 증가하고, 특히 인공호흡기나 소변 카테터 같이 인체에 연결하는 기구가 있는 경우 50~70%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내감염을 막기 위해 기구 소독을 철저히 하고 병원 내 환경을 깨끗하게 하면 할수록 다른 균들은 사멸하지만 녹농균은 작은 습기라도 있으면 바로 번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아청소년에게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앞의 사건에서 녹농균 패혈증의 원인은 개한테 물려서일까요, 아니면 병원에서 이루어진 원내감염 때문일까요? 미생물학에서 녹농균은 유비쿼터스 마이크로오가니즘(Ubiquitous Microorganism)으로 간주합니다. 즉 어디서나 존재 가능한 미생물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전문가도 섣불리 결론내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다른 과목 의사들에 비해서는 녹농균을 보다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아이가 피부감염증에 걸려 항생제를 오래 먹었는데, 도저히 차도가 없거나 오히려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 의심하게 되고 배양검사를 통해 균을 확인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녹농균은 항생제에 다제내성(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다양한 약제에 내성을 가지는 것을 말함)을 보이는데 먹는 항생제에는 절대 듣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소아에서 주요 녹농균 감염증 중 하나는 Erythema Gangrenosum인데, 아직 정식 한글용어가 없을 정도로 드문 질병입니다. ‘괴저성 홍반’을 의미하며, 이름 그대로 피부가 붉어지다가 가운데가 검게 변하면서 썩는 질환입니다. 물론 방치된다면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목숨이 위험하게 됩니다. 치료는 일반 항생제가 아닌 주사 항생제 중 배양검사를 통해 가장 감수성이 높은 항생제로, 하나가 아닌 두 가지 항생제를 병합요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괴상한 균이 흔히 접할 수 있는 균이라서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다쳤을 때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도움말 : 이종호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리포터 : 김용삼 대전MBC 닥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