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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다음 세대를 위한 옥상


다음 세대를 위한 옥상

1994년에서 1995년 1년 동안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연수를 마칠 즈음, 이라크에서 미국의 중동 정책을 공부하고싶다는 마음에 언어연수생으로 등록했습니다. 기자들의 입국은 통제했기에 아랍어 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지인을 통해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이라크는 걸프전에서 미국의 공격을 받은 다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석유 수출이 금지되니 사실상 유일한 ‘돈줄’이 끊겼고 수입도 엄격히 통제되었습니다.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었습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중세를 살았습니다. 육식 위주로 살던 사람들은 1년에 고기 맛 한 번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소풍’ 때 닭 몇 마리를 사다가 한국식 찜닭을 만들어 갔었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정신없이 먹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만큼 물자가 귀했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1년을 살면서 아랍 사람들의 풍습이나 습관, 버릇 같은 것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생활 스타일 가운데 가장 특이한 점은‘아랍 IBM’으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인샬라(Inshallah), 부크라(Bukra), 말리시(Malish)의 두음을 딴 것인데, 압축적으로 그들의 생활 스타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샬라는 잘 알려진 대로 ‘신의 뜻대로’라는 아랍어입니다. 바깥 세계에서는 아랍 모슬렘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많이 인용되기도 합니다. ‘내일 만나자’라는 약속을 했을 때 그들은 곧장 ‘인샬라’라고 하는데, 그러면 외국인들은 ‘인샬라냐, 진짜냐’로 되묻기도 합니다. 때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교통 혼잡때문에 늦어도 ‘신의 뜻’으로 돌리고 자신이 늦잠을 자서 늦어도 ‘신의 뜻’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늦은 것은 하느님의 뜻이지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크라’는 ‘내일’, ‘말리시’는 ‘걱정 마’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며,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니, 걱정 말라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가 들으면 답답하고 속이 뒤집어지는 말이지만 과거를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할 일은 아닙니다. 또다른 사람들의 관습을 우리 기준으로 평가할 일도 아니지요. 사막에서 유목민으로 살 때, 잠시 전에 거대한 모래 산으로 있던 것이 바람이 한 번 불면 눈 깜짝할 사이 평지로 변해 버리고 옆에서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런 만큼 신앙심은 더 커져갔을 것입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는 ‘인샬라’라는 말의 배경에는 그들의 깊은 신앙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집을 지으면서 후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중동에서 살며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옥상’이었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옥상을 많이 이용합니다. 열대 기후이기 때문에 여름 한낮에는 섭씨 40~50도를 기록합니다. 낮에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자동차 후드에 날계란을 깨서 올리면 ‘계란후라이’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질 무렵이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공원에도 가고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중동 사람들이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 무렵 일어나 9시쯤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이들 기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여름에는 옥상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옥상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옥상에 자리를 깔고 누워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잠을 잔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저녁 때 초대를 받아 그들의 옥상 구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상에는 공사를 마친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마감하지 않은 철근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남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마감 공사를 끝내어 매끈하게 바닥을 다듬어 놓을 일입니다. 집 주인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마감 공사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건물은 2층이지만 내 아들 세대에 가족이 늘어나고 재산이 늘어나면 우리는 3층, 또 4층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기초 공사도 그래서 튼튼히 해 놓았습니다. 이 건물은 당신이 보기에 2층이지만 우리는 4층, 5층짜리 건물을 보고 있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아랍 IBM’이니 뭐니 해서 동작이 느리고 ‘구시대적’인 사람들로 알려진 사람들에게서 이런 멋진 이야기가 나오다니 말입니다. ‘오늘에 살지 않고 내일에 산다’는 말이 떠오르지요. 어쩌면 오늘의 밥벌이에 함몰되어 있고, ‘빨리빨리’에 익숙한 외부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재단하는 건 모순일지도 모릅니다. 집을 지으면서 후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년에 내 자리에 올 사람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2층 위에 3층을 올릴 철근을 남긴 것처럼 틀을 짜서 남겨놓는 일이 오늘 내가 할 일입니다. 그래야만 10년, 20년 뒤 후세가 멋진 고층 건물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선수’들과 스승들은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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