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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매니저 2

매니저 2

회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담은 USB가 있습니다. 때로는 홍보 목적으로, 때로는 판매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드리기도 합니다. USB에 담긴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이 있는 바이어가 있으면 그 프로그램을 판매하게 되는데, 회사로서는 부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 위상을 높이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대만과 태국의 방송사에 회사가 제작한 다큐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기관장에게 이 USB를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다음에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USB는 없고 상자가 비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때마침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던 기관장이 ‘빈 상자’ 지적을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잘 모르는 이였다면 큰 실례가 될 뻔 했습니다. 담당 직원이 바뀌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과거에 상사로 계셨던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부하 직원을 의심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분의 말은 이렇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태생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다.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수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것이 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할 준비가 되어 직장에 들어간다. 직장에서 신입 사원은 선배들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선배로부터 기능과 기술, 철학을 잘 배워서 습득하면 그 역시 좋은 사원이 되고 나아가서 좋은 선배가 된다. 그것이 그 회사의 전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배나 상사가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업무에 실수가 생긴다. 선배는 끊임없이 부하 직원을 ‘의심’해야 한다. 항상 실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USB를 전달하기 전에 ‘의심’을 하고, 박스를 한 번 열어보았다면 ‘빈 상자’를 전달하는 실수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직원이 USB를 상자에 넣어 두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전달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또 한 건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회사 행사에서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신임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데, 위촉장 수여 일자가 잘못 나타나 있었던 겁니다. 2017년이 되고도 5개월이 지났는데, 2016년으로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기본 틀이 만들어져 있고 위촉 인사가 바뀔 때마다 이름과 날짜만 수정하기 때문에 생긴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새로 위촉된 위원들이 참석한 와중에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담당자는 분명 새로 위촉된 분들의 이름을 점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도까지는 체크를 하지 못했나 봅니다.


위촉장 하나 정도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방송사고’도 아니고 회사에 금전적인 손해를 끼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OOO님을 OO위원으로 위촉합니다’라는 문구의 증서 하나를 만드는데 크게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2017년이 2016년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다행히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다시 인쇄를 하여 수정은 할 수 있었지만 새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들에게는 면목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하직원을 의심하라’는 말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선배의 일, 상사의 일을

상기시켜 줍니다"



USB 사건이든, 위촉장 사건이든, 회사에 커다란 금전적 손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작은 일을 가지고 법석을 떠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작은 일이 실은 큰일입니다. 옷을 구입할 때를 떠올려 볼까요? 정장을 구입하거나 제법 값이 나가는 목도리 하나를 살 때, 우리는 작은 올 하나만 풀려 있어도 그것을 절대 구입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구석에 흠이라도 없나 꼼꼼하게 살펴보고 확인한 다음에야 구입을 하지요. 10대, 20대 젊은 여성들은 3~4만 원짜리 옷을 하나 구입하는데도 여러 군데 가게를 들러 수십 번 입어보고 살펴보고 난 다음에 옷을 구매합니다. 디자인이나 스타일도 살피겠지만, 흠 없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객은 작은 올 하나 풀려도 옷을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이 큰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부하 직원을 의심하라’는 말은 선배와 매니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선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업무도 해야 하지만, 후배가 하는 일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일을 먼저 해보았기 때문에 후배가 하는 업무가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고쳐주고 길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선배가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되고 임원이 됩니다. 맡은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다 보면 간부가 될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지도자’가 됩니다. 지도자는 단순히 차장, 부장, 국장이라는 직위를 넘어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자나 영어가 때로는 이해를 돕는 경우가 있는데, 지도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한자에서 지도자(指導者)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가리켜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지도자(leader)는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거나 잘못된 길로 이끌면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은 다 망합니다. 산길이라면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맹수를 만나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부하직원을 의심하라’는 말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선배의 일, 상사의 일을 상기시켜 줍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믿음은 얼핏 멋있어 보이지만, USB 없이 빈 상자를 전달하거나 2017년을 2016년으로 기록하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큰일도 잘합니다. 자막 한 글자 틀린 것이 회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을 추구해야 하고, 시청자들의 기대 역시 언제나 우리 생각보다 더 높으니까 말이지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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