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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성공이 최고의 복수다

성공이 최고의 복수다

얼마 전에 만난 대학 총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명문대학’으로 불리는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그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총장으로 근무했습니다(편의상 A 총장으로 부르겠습니다). 나름대로 탄탄한 대학으로 인정받는 학교의 대표로서 가진 자부심도 컸습니다. 그 스스로 훌륭한 교육을 받아왔고 대한민국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분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로 오기까지 ‘설움’도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A 총장이 지방대학 재직 중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때였습니다. 계획되었던 일정을 끝내고 그 지역에 있는 ‘명문대학’ 총장과의 면담을 추진했습니다. 그 대학은 과학·기술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학교로 유수 벤처 기업의 창업자들을 많이 배출해낸 것으로 유명한 학교였습니다. 그 대학 총장도 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낸 유명인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차례 시도를 했는데도 면담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전세계에서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 그 총장과 면담을 원했던 방문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총장실에서도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면담 대상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A 총장이 재직한 대학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업적이 있었다고 해도 문제의 총장실 ‘컷오프’ 선을 통과 할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총장실에서는 ‘다른 일정’ 운운하면서 부드럽게 거절 의사를 전달했겠지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다소 우울하고 다소 화가 나는 경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지방대학에서 임기를 마친 A 총장은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학의 총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외국 방문객과의 면담 일정이 잡혔는데, 실리콘밸리소재, 바로 그 대학의 총장이었습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그 총장은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대학을 방문하고 싶었고, 그 대학의 총장으로 있는 A 총장과의 면담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A 총장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당시 여러 채널을 통해서도 성사되지 않았던 면담이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요청을 해 와서 성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방송사의 경우 실력은

시청률이나 경영 수지를 포함한

‘영향력’일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A 총장의 학력이나 인품이 몇 년 사이 달라진 것도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다녔던 그의 출신 대학이 달라질 리도 없고 그의 업적이 3~4년 사이 달라질 것도 없었겠지요.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그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었습니다. 그의 현재 직함이었다는 겁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지방대학의 총장에서 ‘명문대학’ 총장으로 명함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A 총장은 이 사례를 웃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현재가 만족스러우니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담긴 메시지는 어쩌면 무서울 만치냉정합니다. 내가 느끼는 자부심과 남이 인정하는 ‘급수’는 다르다는 겁니다.


꼭 명문대학을 나와야 하고, ‘계급’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분투해야 하고, 남이 알아주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에 우리는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몰고 온 혁명적인 상황을 목격했지만, 비정상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지위를 거머쥐는 것은 부작용만 낼 뿐입니다.


A 총장의 경험이 보여주는 사례는 외연을 더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은 실력입니다. 실력을 가르는 것은 대학의 경우에 ‘대학 평가’라는 것이겠지요. 마침 오늘자(6월 8일) 신문에는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이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 한국의 대학은 30위 안에 한 곳도 들지 못했고 100위권 안에 4개 대학이 들어갔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A 총장이 만났던 그 대학은 5위권 안에 들어있네요. 방송사의 경우 실력은 시청률이나 경영 수지를 포함한 ‘영향력’일 것입니다.


자부심과 힘은 실력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출신 대학이나 개인의 경제력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상을 하고,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고, 지역 사회와 국가의 방향을 바꾸는 방송사는 실력 있는 방송사입니다.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구입하러 오고, 해외 방송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일부러 일정을 만들어서 방문하는 그런 곳이겠지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영어로는 ‘Success is the best revenge’ 라고 번역할 수 있을 터인데, A 총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옛말 그른 것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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