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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투핸즈

투핸즈

어느 날 당신의 손 하나가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달, 두 달, 어쩌면 1년, 2년을 재활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10년을 재활하며 버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면, 손가락을 쓸 수 없다면 ‘이제 모든 것이 굳어버렸나’ 하고 포기할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비된 손가락을 재활시키기 위해 30년을 투자한 사람이 있습니다. 레온 플라이셔가 주인공입니다. 레온 플라이셔(1928~)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입니다. 그는 10살 때 당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피아노 연주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지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피아노 신동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세운 기록은 많습니다. 10대 때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에서 연주했고, 급기야 1952년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등 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네 살 때였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고공질주를 거듭하던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1964년, 그의 오른손에마비가 왔습니다. 조경용 가구에 손을 벤 다음부터 오른손에 문제가 생겼던 겁니다. “오른 손의 넷째, 다섯째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말려들어가는 거예요. 연습을 더 열심히 했죠. 그랬더니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상황은 더 나빠졌고 1년 안에 두 손가락은 손바닥 쪽으로 완전히 말려들어갔지요.(영국 인디펜던트 신문 인터뷰)” 10대 때 ‘세기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던 그는 이제 오른손을 전혀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른팔 자체가 아무 느낌 없이 몸에 달려있는 밧줄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연주 행사 일정은 무산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끊겼습니다.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나고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2년간의 방황은 길고 힘들었습니다. 결국 그가 돌아온 곳은 음악이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피아노 연주를 하기 위해 반드시 두 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깨닫게 되었지요. 왼손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의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손 연주자만큼은 아니지만 왼손 연주자를 위한 작품이 천 개가 량 있었고, 그 가운데 라벨의 콘체르토는 특히 그가 걸작으로 꼽는 곡이어서 천 번 이상 연습했다고 합니다.


왼손 연주 말고도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것은 또 있었습니다. 지휘와 후배 교육이었습니다. 지휘자로서, 또 후배 음악가를 양성하는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계속하면서 그의 인생은 재활되었지만 그의 오른손은 여전히 마비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른손의 마비를 풀기 위해 그는 의학적, 정신적 치료까지 받았고 침이나 마사지 같은 대체의학요법도 이용했습니다.


"그의 ‘두 손 이야기’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적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났습니다. 지휘자로서 활동을 하던 중에 손목터널증후군을 앓게 된 것입니다. 지휘봉을 너무나 꽉 잡은 탓에 손목터널증후군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손목 절개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러의 제1교향곡을 들으면서 손목 절개수술을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손목 절개수술을 끝내자 오른 손바닥으로 말려들어간 손가락들이 다시 펴졌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병 하나를 고치려다 다른 병까지 고치게 된 것입니다. 18년 만에 플라이셔는 다시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재활훈련과 치료를 거치고, 또 당시로서는 초기 시험 단계에 있던 보톡스의 도움을 받아 양손을 모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두 손 연주자로 돌아온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습니다. 2005년 그는 31개 도시에서 40회의 콘서트를 마쳤습니다. 30여 년의 재활을 끝낸 그가 낸 앨범의 제목은 ‘양손(Two Hands)’이었습니다. 음악 평론가 에디스 아이슬러는 ‘Two Hands’에 대해 “그의 연주는 황홀하게 아름다우며, 풍부하고 완벽하며, 노래하면서 섬세하고, 역동성과 색감, 뉘앙스의 끊임없는 변주를 보이며, 그의 지적, 감성적 집중력은 매혹적”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만약 그가 마비된 한 손에 좌절하고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포기했다면 그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사라져 갔을 것입니다. 그의 ‘두 손 이야기’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음악은 덤일지도 모르겠습니다.(호주산 와인 ‘투핸즈’가 그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와인의 풍부한 맛도 그의 음악과 잘 어울립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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