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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바비 윤희, 마이크를 잡다

“목요일 <정오의 희망곡> 심리 테스트 코너를 맡은 지 4주 됐어요. 매주 새로운 애칭을 지어주시는 애청자가 이번 주엔 ‘정오의 바비 인형’이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운 애칭이지만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새내기 리포터
보아하니 라디오 애청자만은 아닌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애칭을 작명했다는 청취자는 ‘바비 윤희’의 트위터에 실린 일상생활의 모습도 모조리 꿰며 안부를 전하는 그녀의 팬 중 한 명이다. 대전MBC 입사 5개월 차인 정윤희 리포터. <생방송 아침이 좋다>와 <정오의 희망곡>에서 정 리포터를 만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팬이 생겼다는 것은 리포터의 존재감에 대한 반증이다. 웃을 때마다 살포시 피는 보조개와 선이 고운 눈매, 그리고 청량감 있는 목소리는 시·청취자의 마음을 단박에 잡았다. 물론 외모 덕에 얻는 가산 점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정 리포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방송을 ‘잘’ 하기 때문이다. 방송인의 기본 자질이지만 때론 외모지상주의에 밀린 경우를 시청자는 자주 목격해왔다. 그래서 정윤희 리포터는 빛났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 좋다> 속 ‘뉴스N정보’ 코너를 진행할 때는 신뢰성에 무게를 두기 위해 원고를 잡는 손의 각도와 방향까지 고민해요. 그리고 ‘카메라 현장’에서 만난 인터뷰이의 좋은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질까 하는 고민이 제 주된 관심사죠.”
그리고 털어놓는 목격담.
“이수진 선배의 촬영 현장을 따라갔다가 인터뷰이와 순식간에 합을 맞추는 선배 모습을 봤어요. 최소한의 질문으로 최대의 답을 끌어내는 데 좀 충격이었어요. 아직도 선배들 모니터링은 빼놓지 않고 있어요.”

 

가장 혹독한 모니터 요원이자 조력자인 아버지
모니터링만큼 중요한 공부는 없다는 말끝에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모니터 요원은 아버지라고 이마를 살짝 찡그린다. MBC 전신인 동아방송국 합격 경력이 있는 정 리포터의 아버지는 방송인을 꿈꿨지만 조부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그만큼 방송에 대한 애정과 전문 지식이 남달라 매번 정 리포터의 눈물을 쏙 빼놓곤 한다. 무엇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지만 듣는 순간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고. ‘넌 멀었다’며 오목조목 지적하는 채찍질이 끝나면 ‘잘하고 있고, 더 잘할 수 있어~’라며 다독이는 어머니의 품으로 피난을 간다. 그러면 의기소침해진 마음에 다시 용기가 생기고 자신이 방송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녀는 본인에게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달콤한 칭찬과 피도 눈물도 없는 비평 속에 자신을 담금질하며 조금 더 나은 방송인이 되기 위해 자기 시간과 통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 혹독한 자기 관리는 무용을 전공한 그녀에겐 익숙한 일이다. 툭 치면 쓰러질 듯한 몸매엔 학교 육상 대표로 100미터를 13초대로 주파했던 복근과 태권도로 다져진 날렵함, 그리고 백 텀블링을 거뜬하게 넘던 유연함이 공존하고 있다. UFC를 방불케 하는 남동생과의 몸의 대화는 매번 그녀의 승리로 끝났고 이를 갈던 남동생은 주짓수를 배우기도 했다고.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올까 싶지만 어릴 때부터 전공한 한국무용을 입시 4년을 남겨 놓고 현대무용으로 바꿔 당당히 합격한 지독한 근성을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 근성으로 하나씩 채워갈 그녀의 내일은 또 어떨지 궁금해진다.

 

 

변곡점 만들어 준 ‘19금 윤희’
“예전 타 방송사에 있을 때 큰 실수가 있었어요. 평소처럼 방송 시간을 계산해서 왔는데 입구를 가로막은 차량 때문에 갑자기 시간이 확 줄어든 거예요. 방송 3분 전,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갔어요. 50초 남기고 도착은 했는데 숨은 터져 나오고. 결국, 성인방송을 했죠. 하하하.”


지금이야 배를 잡고 웃는 에피소드가 됐지만 그 사건 후로 방송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예측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 방안과 미디어의 파급력에 대한 고찰은 한층 정 리포터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실수일지 모르나 반복되면 실력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을 늘 잊지 않는다. 그러니 반짝하는 스타 방송인이 아닌 긴 시간 곁을 지키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도 이뤄지지 않을까.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만들어야겠죠. ‘사랑해주세요~’가 아닌 사랑 받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싶어요.”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