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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투명한 봄 바다에 담긴 흥, 그리고 맛! ‘당진 실치 축제’를 가다


실치는 베도라치의 치어라고 한다. 나도 ‘당진 실치 축제’를 와서야 그것을 알았다. 베도라치는 얕은 연안에 사는 물고기로 한반도의 바다에 흔히 있으며, 바위틈이나 해초에 숨어 산다. 낚시에도 곧잘 잡힌다. 그 베도라치 알에서 부화한 치어들이 바닷물에 떠돌 때 그물로 잡는데, 이 치어를 실치라 한다.


실치잡이는 충남 당진, 보령, 태안 등의 앞바다에서 주로 하며, 특히 당진의 장고항이 이 실치로 유명하다. 실치를 흔히뱅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뱅어라는 물고기는 따로 있다. 3~4월에 잡는 작은 실치는 연하여 회로 먹는다. 5월에 들면 실치의 뼈가 억세져 회로는 먹을 수가 없고 전부 실치포로 만든다. 실치회는 겨우 한 달 정도 아주 잠시 맛볼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실치 축제를 위해 이른 시간부터 당진 장고항에 머물렀다. 점심 겸 저녁으로 실치회를 맛보았다. 실치라 이름이 붙었지만 실 같지는 않았고, 여러 마리 엉켜있으니 묵처럼도 보였다. 혀에 닿는 느낌은 탱글탱글해 탄력이 있고 씹으면 짠맛과 감칠 맛이 함께 터졌다. 한마디로 무척 낯선 맛이었고, 그 맛이 마치 투명한 봄 바다와 같았다.


밤 8시. 꽤 늦은 시간에 시작되는 쇼였지만 장고항에 모인 수 많은 관객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녁으로 실치회를 먹고 서해의 어스름 노을을 배경으로 분위기에 취한 관객들이 꽤 많았다. 함께 진행을 맡은 트로트 가수 조은새 씨는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관객들이 생각보다 많은 까닭인 듯 했고, 나는 그저, 쇼를 진행하는 동안 함께 즐기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장고항의 어스름한 노을과 행사 직전 먹은 실치회의 바다 내음, 그리고 노을이 어우러져 정말 즐기는 듯 쇼를 진행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트로트 가수 이순정, 김성태, 송가인 그리고 류기진 씨가 노래를 감칠맛 나게 부르자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고, 이어 오늘의 진행 파트너인 조은새 씨가 가수로 무대에 올랐다. 이미 해는 저물어 깊은 밤을 향해갔고 관객들의 흥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나 역시 1시간 남짓 어깨만 들썩이며 자제하던 흥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관객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 또한 이끌린 듯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관객과 진행자와 가수가 하나 된 장고항!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가수 정수라 씨가 무대에 올랐다. 아껴두었던 화려한 불꽃이 들뜬 장고항, 설레는 서해바다 위를 수놓았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노래를 따라하며 쇼를 즐겼다. 숱한 지역 축제를 다녔지만 이날처럼 분위기 있고, 감성적인 축제를 기억해내기 어려울 만큼 좋은 분위기였다. 장고항에는 특별한 낭만이 있었던 것이다.


무대의 끝을 장식하기 위해 남진 씨가 등장했다. 왕년 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였다. 남진 씨의 앵콜곡까지 모두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풀어놓느라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서해 봄 바다, 당진 장고항의 밤이 저물어갔다. 길어야 한두 달, 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바다가 내놓는 선물 같은 실치. 당진 장고항의 실치 풍년은 선택받은 이들만이 즐기고 맛보고 누릴 수 있는 호사였으며 그 짧은 기쁨을 함께 즐길 수 있어 2017년 봄, 나는 참 행복했다.


김경섭 아나운서 / 편성제작국 제작부